로맨스 드라마를 고를 때 "설레는 속도"로 고르신 적 있습니까? 저는 그랬다가 청화저양적아연애파를 처음 틀었을 때 당황했습니다. 양결과 호일천이 나온다는 것 하나만 믿고 시작했는데, 예상했던 빠릿빠릿한 로맨스 대신 어른들의 조심스러운 마음이 천천히 쌓이는 이야기가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한국 드라마 신사의품격 리메이크작이라는 사실이 기대를 더 높였고, 결국 끝까지 정주행했습니다.

짝사랑에서 시작한 이야기, 구조가 다릅니다
로맨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처음부터 상대방에게 마음이 있다면, 보통 고백 한 번으로 전환점이 생기는 것이 공식 아닙니까?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 공식을 살짝 비틀어 놓습니다. 리샤오샤오는 오랫동안 다른 사람을 짝사랑해 왔고, 정작 예한은 그 짝사랑 상대가 아닙니다. 드라마는 이 어긋난 감정의 출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리샤오샤오는 체육 교사이자 사회인 농구단 코치이고, 예한은 잡지사 편집장입니다. 두 직업이 교차할 이유가 딱히 없어 보이는데, 엉뚱한 순간에 부딪히고,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서로를 구해주면서 접점이 생깁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느낀 건, 이 드라마가 운명적 만남을 강조하기보다 우연이 쌓여 인연이 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리샤오샤오의 감정 변화가 더 자연스럽게 보였습니다.
서사 구조 측면에서 이 작품은 멀티 로맨스형식을 취합니다. 멀티 로맨스란 메인 커플 외에 여러 조연 커플의 관계가 병렬로 진행되는 구성 방식을 뜻합니다. 신사의품격 원작이 그랬듯이, 이 드라마도 30~40대 성인 남녀 여러 쌍의 사랑과 결혼, 직업적 갈등이 동시에 펼쳐집니다. 집중도가 살짝 흩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 구조 때문입니다. 저는 솔직히 조연 커플 에피소드가 길어질 때 약간 지루하기도 했습니다만, 쉬자청과 쉬옌 커플은 생각보다 케미가 좋아서 나중엔 그쪽도 챙겨보게 됐습니다.
도시 로맨스의 결이 다른 이유, 캐릭터를 보십시오
중국 로맨스 드라마에서 자주 쓰이는 클리셰라는 표현 아십니까? 클리셰란 반복적으로 사용돼 진부해진 설정이나 표현을 뜻합니다. 냉혹한 재벌 남주, 순진하고 밝은 여주, 갑작스러운 신분 차이 극복 같은 패턴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청화저양적아연애파는 이 클리셰에서 한 발 비켜서 있습니다. 예한은 재벌이 아니라 전문직 종사자이고, 리샤오샤오는 순진한 것이 아니라 서툴지만 자기 의지가 있는 인물입니다.
호일천이 연기한 예한은 캐릭터 아크, 즉 인물이 이야기를 통해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비교적 선명합니다. 겉으로는 차분하고 섬세하지만, 과거의 상처 때문에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 조심스러움이 리샤오샤오와의 관계에서 서서히 무너지는 장면들이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아한 부분입니다. 호일천은 2017년 작품 치아문단순적소미호에서 처음 봤는데, 그때는 소년미가 강했다면 지금은 훨씬 안정감이 생겼다는 것을 이 작품에서 확실히 느꼈습니다.
양결이 연기한 리샤오샤오는 어떻습니까? 저는 양결이 밝고 자연스러운 현대극 분위기에 잘 맞는 배우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그 판단이 맞았습니다. 특히 짝사랑 상대를 놓쳐버린 직후, 예한과 엮이면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중반부의 감정 연기는 과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양결은 쌍세총비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이후 작품 수가 꾸준히 늘고 있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조금 더 입체적인 면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신사의품격과 비교하면 무엇이 다릅니까
한국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중국 리메이크작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단순히 원작과 같은지 다른지를 따지는 것보다, 해당 문화권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재해석했는지를 보는 편이 더 재미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접근하니 훨씬 즐거웠습니다.
한류콘텐츠의 중국 리메이크는 원작의 감성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현지화를 거칩니다. 현지화란 콘텐츠의 배경, 문화 코드, 대사 등을 해당 나라 시청자에게 맞게 조정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청화저양적아연애파는 신사의품격의 40대 남성 그룹 중심 서사를 유지하면서도, 캐릭터의 직업과 관계 설정을 중국 도시 생활에 맞게 바꿨습니다. 잡지사 편집장, 농구 코치 같은 설정이 그 결과물입니다.
원작 신사의품격이 한국 특유의 빠른 호흡과 강한 감정선으로 승부했다면, 청화저양적아연애파는 전반적으로 더 잔잔한 리듬을 가져갑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릴 수 있습니다. 빠른 전개나 강한 설렘을 기대하고 들어오면 초반에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10화 즈음에서 "이게 맞나?" 싶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리샤오샤오의 짝사랑이 정리되고 예한과의 감정이 본격화되는 지점부터는 속도감이 달라집니다. 두 드라마를 번갈아 보면서 각 문화권이 "어른의 사랑"을 어떻게 그리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두 드라마를 비교해 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핵심 차이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원작 신사의품격은 장동건·김하늘 주연으로 2012년 방영됐으며, 특유의 속도감 있는 로맨스와 감각적인 연출이 특징입니다.
- 청화저양적아연애파는 40부작으로 멀티 커플 서사를 더 길게 다루며, 각 인물의 감정 변화를 천천히 쌓아가는 방식입니다.
- 주인공의 직업 설정과 주변 인물 구성이 중국 도시 문화에 맞게 현지화돼 있어, 원작과는 다른 생활감이 느껴집니다.
- 메인 커플의 감정선은 원작보다 우회적이고 조심스럽게 그려지며, 예한 캐릭터의 내면 변화가 중요한 축을 담당합니다.
어떤 시청자에게 맞는 드라마입니까
드라마 추천에서 흔히 듣는 말이 있습니다. "한 번만 보면 돼." 그런데 저는 이 드라마를 두 번 보지는 않겠지만, 한 번은 제대로 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에게 맞는지를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정 몰입형 시청자, 즉 인물의 심리 변화와 관계의 미묘한 흐름을 따라가는 것 자체를 즐기는 시청자라면 이 드라마가 잘 맞습니다. 반면 빠른 사건 전개와 강한 갈등 구조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초반 20화 정도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재미는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하는 거지?" 하고 인물을 관찰하는 데서 옵니다.
또 하나, 호일천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이 작품은 좋은 입문작이 됩니다.
양결 팬이라면 쌍세총비 시리즈, 특히 홍소림 배우와 호흡을 맞춘 작품들도 챙겨보시면 좋겠습니다. 제 경험상 양결은 상대 배우와의 케미가 작품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편인데, 이번 작품에서 호일천과의 호흡은 꽤 안정적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웨이브와 티빙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청화저양적아연애파는 빠른 두근거림보다 천천히 쌓이는 감정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잘 맞는 드라마입니다. 40부작이라 호흡이 느린 건 사실이지만, 예한과 리샤오샤오가 서로를 향해 조심스럽게 마음을 여는 과정이 마지막까지 끌어가는 힘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