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드를 볼 때 다 나오고 나서 몰아보려고 마음먹어 놓고 어쩌다 한 편만 보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하루하루가 고통인 것, 다들 한 번쯤 겪어보셨을 겁니다. 저도 그 함정에 또 빠져버렸습니다. 《서권일몽》이 바로 그 작품입니다. 책 속 세계로 들어간 여주가 비극적인 결말을 피하려 발버둥 치는 설정인데, 막상 보기 시작하니 멈추는 게 더 어려웠습니다.

류우녕이라는 이름 하나로 클릭했습니다
처음에 《서권일몽》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솔직히 말씀드리면 스토리보다 캐스팅 때문이었습니다. 류우녕이 남주라는 소식을 듣고 바로 찜 목록에 넣었습니다. 제 경험상 류우녕처럼 고장극, 즉 시대극 특유의 무게감과 절제된 감정 표현이 몸에 밴 배우는 정말 드뭅니다. 그가 등장하는 장면은 대사 없이도 존재감이 느껴지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그 힘이 그대로 살아있었습니다.
남주 남형은 이른바 냉혈 왕야, 그러니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차갑게 군림하는 왕족 캐릭터입니다. 처음에는 전형적인 악역 남주처럼 보였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가 왜 그런 인물이 되었는지 자꾸 궁금해졌습니다. 류우녕 특유의 눈빛 연기 덕분에 그 의문이 더 깊어졌고, 저는 그게 꽤 반가웠습니다.
거기에 이전에 봤던 작품에서 눈에 익은 위량 장군 역의 배우까지 등장하니 반가움이 두 배였습니다.
낯선 작품을 볼 때 아는 얼굴이 하나라도 있으면 훨씬 몰입이 쉬워지는 법이잖아요.
《서권일몽》은 그 점에서도 입문 장벽이 낮은 작품이었습니다.
책빙의 설정인데 왜 이렇게 안 풀리는 거예요
《서권일몽》의 핵심 설정은 책빙의, 말 그대로 책 속 세계에 몸이 빙의되는 것입니다. 현대의 배우가 자신이 출연할 드라마 대본을 읽다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전제에서 시작합니다. 이일동이 연기한 여주 송일몽은 이미 대본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결말도, 위기 상황도 전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본대로 흘러가지 않으려고 처음부터 필사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피하면 피할수록 더 큰 사건에 휘말리는 구조, 이게 《서권일몽》 초반부의 가장 큰 웃음 포인트입니다. 가마를 보강하면 아이가 뛰어들고, 독주를 피하려 하면 다른 방식으로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런 반복 구조를 서사적 필연성, 즉 이야기 안에서 운명처럼 작동하는 필연의 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들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대본의 흐름대로 움직이고, 심지어 남형조차 그 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웃겼던 장면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남형이 송일몽을 제거하려고 스스로를 쇠사슬로 묶어두고 부하를 시켰는데, 그 쇠사슬을 스스로 끊고 달려가는 장면에서 저는 진짜 소리 내서 웃었습니다. 억지로 만들어진 인연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설정이 코미디이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초반 회차에 이런 코믹한 장면들이 집중적으로 나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고장극 특유의 묵직한 분위기를 기대했다면 처음에 좀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가벼운 코미디 구간이 오히려 후반부 진중한 전개를 위한 완충 역할을 해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드라마 장르론적으로는 이를 서사 이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즉, 긴장을 한번 풀어줌으로써 이후 감정의 무게를 더 크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서권일몽》을 볼 때 주목할 만한 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대본 인지 여주가 운명을 거스르려 할수록 사건이 꼬이는 반복 구조가 초반 코미디의 핵심입니다.
- 남형이 자신의 의지와 반대로 여주를 보호하게 되는 장면들이 두 주인공의 관계 변화를 자연스럽게 이끕니다.
- 황권 다툼이라는 정치 서사는 후반부로 가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초반의 코믹한 분위기와 대비됩니다.
- 이일동과 류우녕의 케미는 대사보다 반응 연기에서 빛나는 경우가 많으니 표정 연기를 주의 깊게 보시면 더 재미있습니다.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가볍게 담는 방식
《서권일몽》이 단순한 로맨스 코미디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은 초반부터 있었습니다. 대본 회의 장면에서 배우의 매니저가 남주 분량을 늘리기 위해 대본을 이상하게 바꾸고, 조연만 하다가 처음으로 여주를 맡은 이일동이 팬 한 명 없이 혼자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장면, 이 장면이 저는 꽤 마음에 남았습니다. 단순한 웃음 코드가 아니라 실제 연예 산업 구조에 대한 냉소가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궁중 정치극에서 자주 사용되는 개념인 황권 쟁탈, 즉 황제 자리를 둘러싼 권력 다툼이 이 작품의 중후반부 핵심 갈등이라고 합니다. 남형이 송일몽을 이용해 초기웅의 단도지법을 손에 넣으려는 계략이 그 시작점인데, 이 부분에서 작품이 단순한 로맨스 이상의 무게를 담으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작품은 정통 고장극을 기대하는 분께는 다소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권력 암투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기본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에, 정치 서사의 깊이보다는 두 사람의 관계 변화가 중심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르적 혼합은 양쪽 모두 어중간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서권일몽》은 지금까지 그 균형을 나름 잘 잡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중국 드라마 시장에서 책빙의 장르는 이미 수십 편이 쏟아진 포화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차별화될 수 있는 이유는 여주가 관찰자이자 행위자라는 이중적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본을 아는 상태에서 그 대본을 바꾸려 하지만 결국 더 깊이 빠져드는 구조, 이것이 단순한 클리셰, 즉 너무 많이 반복되어 진부해진 설정을 비틀어 새로운 재미를 만드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르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이처럼 장르 관습을 의식적으로 해체하는 방식을 메타픽션적 접근이라고 부릅니다. 메타픽션이란 작품 안에서 작품 자체의 허구성을 드러내며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법을 뜻합니다. 《서권일몽》은 그 개념을 드라마 형식에 녹여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서권일몽》은 초반부만으로도 이일동의 코믹한 생존기와 류우녕의 감정 억제 연기가 꽤 잘 맞물린다는 것은 분명히 느꼈습니다. 가볍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고장 로맨스를 찾고 있는데 선택이 어렵다면, 일단 두 편만 보시길 권합니다. 멈추는 것은 그다음부터 본인이 결정하셔야 합니다.